발이 가장 먼저 아는 계절
비가 오기 시작하면 발이 가장 먼저 압니다. 출근길에 한 번 젖은 신발은 하루 종일 마르지 않고, 양말 속은 꿉꿉하고, 발가락 사이는 저녁까지 축축합니다.
네이버에서 ‘장마’라는 단어가 검색되는 흐름은 6월 둘째 주부터 갑자기 가팔라집니다. 지난해에는 이 주에 검색량이 전주의 세 배 넘게 뛰었고 실제 장마가 시작된 6월 말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비가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그 눅눅한 계절부터 검색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여름 발 가려움과 무좀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모든 관리법이 “발을 잘 말리는 것”으로 모인다고 적었습니다. 장마는 그 일이 1년 중 가장 어려워지는 시기입니다. 공기 중 습도가 높으니 씻어도 잘 마르지 않고, 신발은 마를 새 없이 다시 젖습니다.
옛 의학은 이 눅눅함을 그냥 날씨 이야기로 두지 않았습니다. 습(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스리는 약재까지 정해두었습니다. 그 목록의 윗자리에 있는 것이 뜻밖에도 아주 친숙한 곡식, 율무입니다.
율무차의 그 율무
율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입니다. 자판기 버튼에도 있고 사무실 탕비실에도 있습니다. 고소한 율무차 한 잔으로 기억되는 곡식이고, 밥에 섞어 먹는 잡곡이기도 합니다.
약재로 쓸 때는 껍질을 벗긴 씨앗을 의이인(薏苡仁)이라고 부릅니다. 학명은 Coix lacryma-jobi. 종소명 lacryma-jobi는 라틴어로 ‘욥의 눈물’이라는 뜻입니다. 야생 율무의 열매가 눈물방울처럼 생겨서, 영어권에서는 지금도 이 곡식을 Job’s tears, 욥의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버더웬즈데이 족욕젤의 전성분에도 이 이름이 있습니다. 율무씨추출물. 차로 마시던 곡식이 발을 담그는 젤 안에는 왜 들어가 있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면 옛 의서와 조선의 새벽 궁궐, 그리고 현대의 실험실까지 이어집니다.

동의보감이 의이인에게 맡긴 일
동의보감은 의이인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폐위(肺痿), 폐기(肺氣)로 피고름을 토하고 기침하는 것을 치료한다. 또한 풍습비(風濕痺)로 근맥이 당기는 것과 건각기, 습각기(濕脚氣)를 치료한다.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두 글자가 반복해서 눈에 들어옵니다. 습(濕), 그리고 각기(脚氣), 즉 다리입니다. 풍습비는 바람과 습한 기운으로 근육과 관절이 무겁고 당기는 증상을, 습각기는 습으로 인해 다리가 붓고 무거워지는 증상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한국전통지식포탈도 의이인을 “열을 내리고 습(濕)을 제거하며 비(脾)를 튼튼하게 하는 약재”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통 의학은 습을 무겁고 끈적해서 아래로 가라앉는 기운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습의 문제는 몸의 가장 아래, 다리와 발에서 잘 나타난다고 여겼습니다. 장마철이면 몸이 무겁고 다리가 잘 붓는다는 오래된 호소를 옛 의학은 이 틀로 설명했고, 그 습을 다스리는 곡식으로 늘 의이인을 첫손에 꼽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현대 의학의 언어가 아니라 옛 의학의 분류입니다. 다만 “습한 계절과 다리, 발”이라는 묶음이 수백 년 전 문헌에 이미 한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합니다.
새벽 궁궐에 오르던 죽 한 그릇
조선 궁중에는 임금이 아침 수라를 받기 전, 이른 새벽에 부드러운 죽을 먼저 드는 초조반(初早飯)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죽상에 오르던 죽 한 갈래를 응이라 불렀는데, 본래 율무를 가리키던 한자명 의이(薏苡)가 변해 녹말로 쑨 죽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 된 것입니다. 성호 이익이 “곡물 이름을 죽 이름으로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을 만큼, 율무는 죽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던 곡식입니다.
왕실에서 율무죽이 놓인 자리는 별식보다 처방에 가까웠습니다. 내의원에는 병이 나면 약보다 음식으로 먼저 다스리는 식치(食治)의 전통이 있었고, 몸에 습이 차고 비위가 처질 때 자주 올리던 음식이 의이인죽이었습니다. 승정원일기에는 왕비의 병상에 한습(寒濕)을 제거하는 처방으로 의이인죽을 올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서 《식료찬요》(1460)는 부종에 율무죽을 권했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율무죽 끓이는 법을 아예 내국방(內局方), 즉 내의원의 방식이라고 적었습니다.
새벽 죽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율무가 맡았던 일은 같습니다. 몸에 찬 습기를 다스리는 것. 장마철 무거워지는 다리와 발의 이야기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마시던 곡식이 피부로 온 길
여기서 한 가지를 솔직하게 짚고 가야 합니다. 동의보감과 왕실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먹는 율무의 기록입니다. 달여 마시고 죽으로 쑤던 곡식이 피부에 닿는 성분이 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 현대 화장품의 일입니다. 마시는 것과 바르는 것은 다른 경로이고, 옛 기록을 그대로 피부 효과의 근거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대신 현대는 현대의 방식으로 이 곡식을 다시 살폈습니다. 율무씨추출물은 화장품 원료 사전에 올라 있는 식물 유래 성분으로, 예전에는 의이인추출물이라는 옛 이름으로 불리던 원료입니다. 율무씨 다당류와 염증 반응의 관계를 따져본 연구가 보고되어 있고, 2024년에는 율무 새싹 추출물을 다룬 연구가 국제 학술지에 실렸습니다. 히스타민으로 가려움을 유발한 동물 실험에서 새싹 추출물을 처리하자 긁는 행동이 줄었다는 보고입니다.
이런 연구는 대부분 추출물이나 단일 성분을 실험실 조건에서 본 것이라 효과를 보장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그래도 차로 마시고 죽으로 먹던 흔한 곡식이 피부라는 새 각도에서 연구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장마철의 발, 오늘 할 수 있는 것
옛 의학은 습한 계절의 문제가 다리와 발로 내려온다고 적었습니다. 현대 피부 과학의 설명은 더 구체적입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발가락 사이 각질이 물을 머금어 붇고 짓무르기 쉬워집니다. 곰팡이와 세균이 살기 좋은 조건이 되고 무좀과 발냄새가 장마철에 심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증상이 분명하거나 오래간다면 피부과에서 항진균제 치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고, 족욕은 치료가 아닙니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합니다.
- 집에 오면 발을 씻고, 수건으로 발가락 사이까지 닦은 뒤 드라이어 찬바람으로 마무리합니다. 뽀송한 상태가 목표입니다.
- 로션이나 풋크림은 발을 말린 다음 뒤꿈치 중심으로 바릅니다. 발가락 사이는 습기가 차지 않게 비워둡니다.
- 신발은 두세 켤레를 번갈아 신어 하루씩 마를 시간을 줍니다.
- 가방에 여분 양말 하나. 젖은 양말을 그날 바로 갈아 신는 것만으로도 발의 하루가 달라집니다.
족욕은 이 루틴의 첫 자리, 씻는 단계에 들어옵니다. 하루 종일 젖은 신발 속에 있던 발을 따뜻한 물에 담가 씻어내고 그다음 충분히 말리는 것. 그 물에 옛 사람들이 습을 다스린다고 꼽던 곡식의 추출물까지 더해져 있다면, 발에게는 꽤 괜찮은 10분입니다.
눈물방울 모양의 오래된 곡식
돌아보면 자판기 버튼 속 그 곡식은 임금의 새벽 죽상에 오르던 이름이었고, 옛 의서가 습과 다리 항목에 적어둔 약재였습니다. 그 씨앗을 현대 연구가 이제 피부 쪽에서 다시 꺼내 보고 있습니다.
오버더웬즈데이의 풋 힐링 데이와 풋 릴렉싱 데이 전성분에 율무씨추출물이 담긴 이유도 이 이력 위에 있습니다. 신발이 마를 새 없는 계절이 코앞입니다. 발을 씻고 말리는 하루 끝 10분이, 올여름 가장 쉬운 발 관리일지도 모릅니다.
오버더웬즈데이 족욕젤에 담긴 다른 약재가 궁금하다면 여름마다 양말 벗기가 무서운 사람에게, 길가에 흔한 풀 이야기, 얼굴에 쓰던 어성초, 발에도 쓰이는 이유, 단오는 명절이 아니었다도 함께 읽어보세요.
이미지: Coix lacryma-jobi ⓒ Salicyna (CC BY-SA 4.0), Freddo213 (CC BY 4.0), Fumikas Sagisavas (CC0), via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