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왜 봄 정오에, 물시계로 시간을 재며 발을 담갔을까

숙종은 왜 봄 정오에, 물시계로 시간을 재며 발을 담갔을까

1717년 봄, 숙종의 어의는 물시계까지 동원했습니다

1717년 봄, 온양온천

아산 현종정미온행망천도병풍 —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온천 행행 기록화

출처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KOGL)

숙종 43년, 음력 3월. 57세의 숙종은 눈이 어둡고 어지러운 증상과 다리 저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의 이중번은 온양온천 행행을 건의합니다.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온천욕이 이어졌습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오시(午時)에 임금이 온천에 나아가 머리를 500바가지나 감고, 배꼽 아래를 2각(30분) 동안 담갔다.

배꼽 아래를 30분간 담근 것, 이것이 반신욕입니다. 금루(물시계)로 시간까지 정확히 재면서요.

그리고 3월 22일, 기록이 바뀝니다.

사시(巳時)에 임금이 온천에 나아가 머리를 200바가지 감고, 다리 아래를 1각(15분) 동안 담갔다.

다리 아래를 15분. 바로 족욕입니다.

왜 하필 봄이었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건 시기입니다. 단순한 치료였다면 굳이 ‘봄, 그것도 정오’일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의의 선택에는 분명한 의학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동의보감의 뿌리가 되는 황제내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春三月 此謂發陳 — 봄 석 달은 ‘발진(發陳)‘이라 한다.

묵은 것이 물러가고 새 기운이 솟아오르는 시기. 한의학에서 봄은 양기(陽氣)가 땅속에서 위로 치솟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1년 중 양기가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시점이 3월이고, 하루 중 양기가 가장 활발한 시간이 정오 무렵입니다.

어의는 양기의 흐름을 타서 온천욕의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 겁니다.

동의보감

눈병을 발로 고치는 원리

숙종의 증상을 다시 봅시다. 눈이 어둡고 어지럽다(상체에 열이 몰림) + 다리가 저리다(하체가 차가움).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가운 상태, 한의학에서 상열하한(上熱下寒)이라고 부르는 불균형입니다.

동의보감 외형편에 정확히 이 상황에 대한 처방이 있습니다.

눈에 피가 지고 부으면서 발이 차면, 더운물로 발을 자주 씻는 것이 아주 좋다.

위에 몰린 열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 이것이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원리이고, 우리가 익히 아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의 근거입니다.

결국 족욕은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열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치료였습니다. 그래서 봄에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양기가 급상승하는 봄이야말로 열이 위로 몰리기 가장 쉬운 계절이니까요.

한 가지 더. 한의학에서 봄은 간(肝)의 계절입니다. 오행(五行)에서 봄은 목(木), 목은 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간경락(足厥陰肝經)은 엄지발가락에서 시작해 간으로 올라갑니다. 족욕이 간경락을 직접 자극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숙종의 어의가 봄에 족욕을 처방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00년 전 약재, 지금 우리 발밑에도

숙종의 온천욕에 어떤 약재가 쓰였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의보감이 족욕과 함께 처방한 약재들은 분명합니다.

작약은 동의보감 200여 개 처방에 등장하는 대표적 약재이고, 천궁은 ‘혈중지기(血中之氣)‘라 불리며 혈액순환의 핵심으로 쓰였습니다. 인삼은 원기를 보하고, 감초는 이 모든 약재의 조화를 맡았습니다.

특히 당귀, 천궁, 작약은 동의보감 사물탕(四物湯)의 핵심 약재입니다. 사물탕은 보혈(補血)의 정석 처방으로, 간에 저장된 혈을 보양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봄에 간이 활발해지려면 충분한 혈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혈을 보하고 순환을 돕는 이 약재 구성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체계입니다. 오버더웬즈데이의 16종 한방 추출물에도 이 약재들이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왕실 처방을 재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같은 전통, 같은 의학적 지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봄, 발부터 시작해 보세요

300년 전 숙종은 어의의 지도 아래, 물시계로 시간을 재며 족욕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물시계는 필요 없습니다. 40°C 물에 15분, 거실에서 충분합니다.

봄이 오면 양기가 올라오고, 몸의 균형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위로 몰린 열을 아래로 내려주는 것. 수백 년 전에도, 지금도 원리는 같습니다.

발끝부터 시작하는 봄맞이. 300년 전 숙종이 했던 방법, 그대로입니다.


오버더웬즈데이의 풋 힐링 데이풋 릴렉싱 데이에는 작약, 천궁, 인삼, 감초를 포함한 16종 한방 추출물이 담겨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한국의 목욕 문화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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