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으로 자꾸 발을 빼는 계절
여름밤에는 유독 발이 신경 쓰입니다. 낮 동안 뜨거워진 발바닥이 밤이 되어도 좀처럼 식지 않고, 이불 속에서 화끈거려 자꾸 발만 밖으로 빼놓게 됩니다. “발바닥이 뜨거워 잠들기 힘들다”, “여름만 되면 발이 후끈거린다”는 말은 이맘때 흔한 하소연입니다. 하루 종일 신발 속에 갇혀 있던 발이, 열이 빠져나갈 곳을 찾는 셈입니다.
이럴 때 옛사람들이 곁에 두던 곡물이 하나 있습니다. 잔칫날 빈대떡과 청포묵의 재료로만 익숙한 녹두입니다.
빈대떡 재료로만 알던 곡물
녹두(綠豆)는 이름 그대로 짙은 녹색을 띠는 작은 콩입니다. 팥보다 알이 작고,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오래 길러온 곡물입니다. 청포묵, 녹두죽, 빈대떡, 숙주나물까지, 우리 밥상과 잔칫상에 빠지지 않던 친숙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이 녹두가, 오버더웬즈데이 족욕젤의 성분표 안에도 들어 있습니다. 전성분을 보면 녹두씨추출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먹는 곡물로만 알던 녹두가, 발을 담그는 젤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 있을까요. 이야기는 옛 기록에서 시작됩니다.
전통 문헌이 적어둔 녹두

옛 기록에서 녹두는 “차가운 성질”로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녹두를 두고 “성질은 차고(평하다고도 하고 싸늘하다고도 합니다) 맛은 달며 독이 없다”고 적으며,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삭히며 기를 내린다”고 정리합니다. 한여름 더위로 오른 열, 이른바 번열(煩熱)을 가라앉히는 데 쓰던 곡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발과 연결되는 결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열을 내린다는 청열(淸熱)의 결이고, 다른 하나는 부은 것을 삭힌다는 결입니다. 옛사람들은 더위를 먹거나 몸에 열이 오를 때 녹두죽과 녹두물을 곁에 두었고, 이 “열을 식히는 곡물”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여름철 녹두 요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에서 녹두는 먹는 데만 쓰인 것이 아닙니다. 여인들은 녹두를 곱게 갈아 세안과 팩에 썼습니다. 지금도 “녹두가루 세안”, “녹두팩”은 집에서 하는 오래된 피부 손질법으로 남아 있어, 얼굴의 열기와 번들거림을 가라앉히는 결로 이야기됩니다. 먹어서 몸의 열을 식히고, 갈아서 피부의 열기를 다스리던 곡물. 녹두는 그렇게 안팎으로 “식힘”과 이어져 온 재료입니다.
오래된 곡물이 화장품 성분으로
현대에 들어와 녹두는 화장품 성분 쪽에서 다시 자리를 얻습니다. 녹두씨추출물은 진정 계열의 식물 유래 원료로 활용되고, 피부를 편안하게 가꾸는 성분으로 배합됩니다.
다만 여기에는 정직한 단서가 필요합니다. 옛 기록의 쓰임은 대부분 녹두를 달여 먹거나 가루 내어 얼굴에 직접 쓰던 방식이고, 화장품 원료로서의 평가도 대부분 실험실 단계의 연구입니다. 그러니 녹두씨추출물은 특정 효과를 보장하는 성분이라기보다, 발을 씻고 쉬게 하는 루틴 안에서 피부를 편안하게 가꾸는 식물 유래 성분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합니다.
얼굴이 아니라 발에, 왜 족욕에 쓰는가
한 가지 더 짚을 점이 있습니다. 전통의 쓰임은 녹두를 먹거나 얼굴에 바르던 방식이었고, 족욕은 그것과 다릅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일을 두고 약 같은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발이 화끈거리는 감각도 대개는 하루의 피로에서 오지만, 열감이 오래 이어지거나 저림이 함께 온다면 그건 다른 원인일 수 있으니 병원에서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족욕에서 녹두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결이 맞기 때문입니다. 녹두는 전통적으로 열을 내리고 번열을 가라앉힌다는 청열의 결로 쓰여온 곡물입니다. 하루 종일 신발 속에 갇혀 있다 저녁이면 후끈거리는 발, 그 감각과 이 결은 멀지 않은 자리에 놓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발이 화끈거리는 밤에는 물의 온도를 너무 높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뜨거운 물보다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그고, 종아리를 가볍게 풀고, 잠시 발을 높여 쉬게 하는 시간. 하루의 끝에 그런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발은 한결 편안해집니다.
밥상 위 곡물의 오래된 이력
잔칫날 빈대떡 재료로만 지나치던 곡물이지만, 녹두의 이력은 길고 구체적입니다. 짙은 녹색에서 이름을 얻었고, 옛 기록은 그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린다고 적어두었으며, 여인들은 그 가루로 얼굴의 열기를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오버더웬즈데이의 풋 힐링 데이와 풋 릴렉싱 데이에도 녹두씨추출물이 담겼습니다. 발이 후끈거리는 여름밤,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그고 쉬게 하는 루틴 속에서 예로부터 열을 식히던 그 곡물을 다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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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Vigna radiata ⓒ Ivar Leidus (CC BY-SA 4.0), Sanjay Acharya (CC BY-SA 4.0), pics_pd (CC0), via 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