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은 복날에 계곡에 발을 담갔다

선비들은 복날에 계곡에 발을 담갔다

삼계탕 말고, 복날에 하던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7월 15일, 초복입니다

올해 초복은 7월 15일입니다. 이날 점심때 삼계탕집 앞을 지나면 줄이 깁니다. 중복은 25일에, 말복은 8월 14일에 옵니다. 복날에 뭘 하느냐고 물으면 답은 대체로 하나로 모입니다. 삼계탕을 먹습니다. 검색창에 초복을 넣어봐도 맛집과 레시피와 닭값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복날 항목에는 그날 하던 일이 하나 더 적혀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여인들은 참외나 수박을 먹었고, 어른들은 “산간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면서 더위를 피하기도 한다”고요. 탁족은 발을 씻는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계곡에 들어가 발을 담갔습니다.

복날은 절기가 아닙니다

복날의 복은 엎드릴 복(伏)입니다. 흔히 떠올리는 복(福) 자와는 다른 글자입니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여름의 센 불기운에 눌려 엎드려 있다는 뜻으로 풉니다. 글자를 사람 인에 개 견이 붙은 모양으로 보아 사람이 엎드린 형상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름과 달리 복날은 24절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입춘이나 하지처럼 해의 위치로 정해지는 날이 아니라 날짜를 세던 옛 방식을 따릅니다. 하지가 지나고 세 번째로 오는 경일(庚日)이 초복, 네 번째가 중복, 입추가 지나고 첫 번째 경일이 말복입니다. 경일은 열흘에 한 번씩 돌아오니 복날도 열흘 간격으로 오는데, 중복과 말복 사이만 스무 날로 벌어지는 해가 있습니다. 올해가 그렇고, 이런 해를 월복이라고 부릅니다.

발만 담근 이유

발을 물에 담그는 이 일에는 탁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여름 풍속으로 올라 있고, 분야는 놀이로 분류돼 있습니다. 왜 하필 발만 담갔을까요. 같은 항목이 한 줄로 답합니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 담근 것이다.” 옷을 벗기 싫었던 겁니다. 더워 죽겠는데 계곡까지 걸어가서, 옷은 그대로 입고 신발과 버선만 벗고 발을 물에 넣었습니다.

그림으로도 남았습니다. 옷섶을 풀어헤친 채 바위에 앉아 개울물에 발을 담근 사람. 16세기 후반 이경윤의 것으로 전하는 고사탁족도가 대표적이고, 이정의 노옹탁족도와 최북의 고사탁족도도 같은 장면을 그렸습니다. 하나같이 발만 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체면 때문에 발만 담갔다는 게 좀 우습게 들리기도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여름마다 발을 담그는 습관이 하나 생긴 셈입니다.

더위를 쫓지 않고 잊는 쪽

같은 사전은 이 풍습을 두고 음식이나 기구로 더위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더위를 잊는 “참으로 선비다운 피서법”이라고 정리합니다. 탁족을 음식 옆에 대놓고 붙여 놓은 대목입니다. 복날에는 잘 먹는 방법과 잘 쉬는 방법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쪽이 음식이었을 뿐입니다.

탁족에는 쓸모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사전은 탁족이 정신 수양의 방법이기도 해서 선비들이 산간 계곡에서 탁족을 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씻기도 했다고 적습니다. 발을 물에 담그고 앉아 있는 시간이 그 자체로 목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름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노래인데, 맹자에는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로 실려 있고 초사의 어부사에도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원래 떠돌던 노래를 양쪽이 각각 가져다 쓴 셈이라 백과사전마다 출처를 다르게 적기도 합니다. 물이 맑든 흐리든 거기 맞춰 살면 된다는 말입니다.

계곡물과 대야의 물

계곡까지 못 가는 사람은 집에서 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갔습니다. 선비들이 계곡에서 담근 건 산속의 찬물입니다. 한여름에 시원하라고 담갔습니다. 저희 족욕제는 따뜻한 물에 씁니다. 방향이 반대입니다.

백과사전에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발바닥에 온몸의 신경이 몰려 있어 발만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진다거나, 흐르는 물이 기가 흐르는 길을 자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옛사람들이 이 풍습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거기 담겨 있습니다. 저희가 검증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그대로 옮기기만 합니다.

물 온도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건 발만 물에 넣고 잠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그거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여름 나는 방법으로 몇백 년 동안 써 왔습니다.

그리고 인삼

초복에 삼계탕을 드셨다면 그 안에 인삼이 들어 있었을 겁니다. 복날 보양의 중심에 늘 있던 약재입니다. 오버더웬즈데이의 풋 힐링 데이풋 릴렉싱 데이에도 인삼이 들어갑니다. 16종 한방 추출물 중 하나입니다. 먹는 인삼과 물에 풀어 발을 담그는 인삼이 몸에서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복날 저녁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어도 뜬금없지 않습니다. 복날은 원래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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